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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었지

곰배령, 야생화가 있는 자연의 뜰


꿈속에서, 
아주 깊은 꿈속에서, 
단조로운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그리고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나는 어디서 왜 이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일까?

새벽 다섯 시를 외쳐대는 알람소리다. 
두 시 넘어서 겨우 잠들었다. 
일어나야 한다는 마음을 몸이 짓누룬다. 

어제 저녁 파주로 워크샵을 갔었고, 
오랫만에 프로젝트팀원과 고객분들이 어울리다보니
발효음료도 약간 있었다.

떠나지 못하도록 잡아채는 분위기 때문에
11시를 넘은 시간에 자리를 빠져나왔다.  

서둘러 출발준비를 한다.
등산복을 입고, 비옷을 챙기고, 여분의 옷도 챙긴다.

[금요일 저녁 확인한 날씨 예보]

비올 확률 90%.
그런 곳을 향해 가는 마음이란
비쯤이야 젖을테면 젖으라지.

산에 오면, 
비가 흐르든 땀이 흐르든,
둘 중에 하는 흘러야 한다고 한다.  

[동홍천 IC를 지나 국도로 들어선 곳의 하늘]

구름이 빼곡하지만,
여기 저기 하늘이 설핏설핏 보인다.
하늘만 보자면 분위는 심상치 않다. 

오늘의 산행길은 친구와 함께 한다.
세 시간 밖에 자지 못한 나를 위해 용주가 운전을 한다. 
덕분에 나는 용주의 이야기를 들으며 바깥 풍경을 맘껏 느끼고 담아낸다. 


짙고 짙은 푸름 속에 산과 들, 
그속에 점점이 박혀있는 작은 집들. 
눈과 가슴이 모두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언젠가는 나도 이 사진 속의 한 부분이 되리라... 

오늘은 인제로 돌아서
내린천을 지나 진동리로 향한다.

서울에서 5시 40분에 출발하여,
9시 경에 곰배령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다.
너무 일찍 나선 탓인지
속이 출출하다.

주차장 입구 허름한 주막(?)에서 감자전 하나를 주문하고,  
용주가 싸 온 현미 도시락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챙긴다.
주인께서 미리 얼려 둔 생수 두 병을 챙겨서 주막을 나선다.  

생각과는 달리, 
시간대별로 팀을 이루어 출발하지는 않는다. 
예약 시간에 도착하는 팀은 숲 해설가와 출발하고,
늦게 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따로 출발하고 있다. 

발효음료와 부족한 잠으로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줄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던터라
자유롭게 등산할 수 있는 상황이 내심 고마웠다. 

[곰배령 입구]

입구에서 예약시간과 이름을 대고 노란색 입산허가증을 받는다.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곰배령을 향해 나선다. 

잠깐 산길을 들어가는 입구에서 
인증샷 하나... 
친구가 모델이 되어 준다. 

[ 곰배령 길로 들어서기 전 인증샷 ]

산길을 들어선다. 
산길이라고 하기엔 너무 잘 갖추어져 있다. 

넓은 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오래된 무쏘 한 대가 저기서 매연을 뿜으면 다가온다. 

친구와 둘은 서로 쳐다보면서 의아해 한다. 
자연 그래로의 원시림이 살아 숨쉰다는 곰배령 길에 웬 무쏘? 

[처음 들어 선 길은 생각보다 넓었다.]

길과 나란히 흐르고 있는 계곡은 아담한 크기였다. 
하지만, 물이 생각보다 맑지 않았다. 
지난 번 아침가리골의 청명한 물을 보아서일까?

길도 넓고 
물도 탁한 느낌이 있고
뭔가 마뜩찮은 기분을 안고 앞서 가는 분들을 쫓아 걸었다. 

[길을 따라 흐르는 물은 그리 맑지 않았다.]

조금만 지나자 저마다 여기저기에
자랑스런 명찰을 달고 서 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나무의 모양새는 눈에 익지만
이름은 왠지 낯설다.  

매일 출근길에 만나는 낯익은 사람, 
이름을 알필요없이 늘 대하는 그런사람마냥,
우리 산천을 지키는 나무를 무덤덤하게 대해 왔구나.

이름이나 한 번 외워볼까 하는데 
여기저기 명찰을 달고 서 있는 나무들이
고개를 불쑥 내밀고는 자기를 봐 달란듯이 서 있다. 

휴... 
세 시간의 수면으로 졸리는 나의 눈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발길을 재촉하지 않으면 걷다가 졸음에 넘어질 것만 같다. 
에휴, 그냥 앞을 보고 똑바로나 걸어가자.

[ 이쁜 명찰을 달고 있는 들메나무 ]

이름 하나는 수도 없이 들어 본
고로쇠 나무

[허리께만 찍으면 섭섭해 할까봐 윗쪽도 찍었다.]

사진 몇 장을 찍고는 서둘러 걷고 있는데,
집들이 한 두 채씩 나타난다. 

왜 물이 탁한지 이유를 알겠다. 
여기는 곰배령 들어가는 길이라기 보다는 강선마을 들어가는 길이다. 

[ 강선마을 표지목 ]

우리가 가려는 곰배령 원시림 길은 
아마도 이 마을을 지나쳐야 나타나겠지. 

곧바로 이정표가 나타난다. 

[강선마을 입구 표지목]

몇몇 팬션이 있는 듯 하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네바퀴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를 지나쳤다. 
팬션을 찾은 손님들의 짐인듯 했다. 

우리는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갑자기 키큰 나무들이 길가에 늘어선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저만치 자리를 펴고 쉬고 있다. 

[ 가는 길에 본 가장 키큰 나무들 ]

잠시 키큰 나무숲을 지나고 나니
짐들이 서너채 보인다. 
파전에 막걸리를 판다는 간판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장사와는 상관 없는 듯
단정하게 자리잡고 있는 집도 한 채 보인다. 
텃밭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자라고 있다. 
이뻐 보인다. 
하루에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지나쳐서 인지
나무로 담을 길게 쳐 놓았다. 


강선리 마을을 벗어나자
입산허가증을 확인하시는 분이 길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목에 걸고 있는 패찰을 확인하자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여기서부터가 곰배령가는 길이다.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좁은 듯한 산길이다. 

이내 개울이 나타나고
커다란 호박돌로 놓은 징검다리가 단정하다. 


길 오른 쪽으로 흐르는 개울물이 좀 더 맑아 보인다. 
개울에 내려가지 못하게 말뚝을 박아 두었다. 
사람의 손을 전혀 타지 않은 개울이 각자의 모양대로 흘러간다. 
특별히 잘 난 것 없이 소박하게 흘러가는 개울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는 느낌을 가질 때 쯤
쉬어갈 만한 곳이 나타난다. 
입구로부터 여기까지가 곰배령 중간 정도 되는 거리라고 한다. 


휴식장소가 보이는 위쪽에 자리를 하고는 
원시림이라고 칭송한 곳이 어디일까라며 둘러본다. 
특별히 눈에 뛸만한 나무나 숲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땅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 그냥 그런 나무들로 가득하다. 
특별히 크지도 않고, 
특이한 모양도 없고 
그냥 말그대로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거진 나무들이라는 표현 이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 자연스럽게 우거진 나무들 ]

가는 길에 옆으로 넘어져 있는 나무가 눈에 뛴다. 
오래 전에 넘어져서 저기 끝에 보이는 나무에 걸쳐져 있다. 
넘어져서도 죽지 않은 듯 그렇게 무거운 몸을 버티고 있다. 


오르는 길이 조금씩 더 가파르다. 
길은 진흙이어서 미끄러지기 쉬운 땅이다. 
그런 곳은 땅에 돌을 박아 잘 다져놓고 줄까지 쳐 놓았다. 
애쓰신 분들 덕에 오르기가 수월하다. 

[길이 질퍽한 곳을 돌을 다져놓았다.]

오르는 길 왼쪽으로 제법 모양을 갖춘 조그만 폭포가 보인다.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길 외에 다른 곳으로 가면 안된다고 하는 주의를 받은 터라 참는다. 


갑자기 하늘이 넓게 트이기 시작한다. 
곰배령이 얼마남지 않은 듯 하다. 

드디어 길 옆으로 작은 야생화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똑딱이가 이쁜 꽃에 초점을 두지 않고, 
주변의 푸른 풀잎에 촛점을 둔다. 

이리저리 조작을 해 보지만,
나와 함께 한 지 얼마되지 않은 터라 무시하고 그냥 찍는다. 

[여기저기 수풀 속에 야생화들이 보인다.]

곰배령이다. 
지금부터는 말이 필요없다. 
그냥 보이는대로 셔터를 눌러댄다. 
조금 이상하게 나온 것 빼고는 모두 순서대로 올려본다. 

하늘에서 곰배령을 내려보고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기 멀리 점봉산 정상이 보인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정상일까라는 의문도 든다. 

곰배령 소개에서 처럼 "천상의 화원"은 아니지만, 
우리 땅에서 이렇게 넓은 야생화 군락지를 만나기를 어려울 것이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수수한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드러내지 않고 다른 풀 속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곰배령을 바람이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땀을 식어버리고, 
서늘한 느낌 마저 들기 시작한다. 

작고 여린 꽃잎은 그 바람에 거스르지 않고
온몸을 흔들며 바람을 타고 있다. 

곰배령의 야생화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함께 어우러져 진한 녹색 배경을 깔아주는 잡초들이다. 

야생화를 보호하기 위해 관찰할 수 있는 마루를 설치했다.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꽃들과는 많이 다르다.
한참을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빼놓을 수 없는 인증샷 !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재미있는 표정이나 자세로 모델이 되어주는 나의 친구... 

나는 오늘도 범생이 포즈.... 

나는 저 꽃의 이름을 모른다. 
허허들판같은 이 곳은 보라색이 어울리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저 보라색 꽃은 나의 눈을 잡고 놓지 않는다. 
간식을 먹는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기 멀리 서쪽에서 곰배령으로 쉴새없이 바람이 몰려왔다. 
야생화들은 그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그 바람 맞고 사는 여린 야생화들이 기특하다. 

점봉산 반대편 산이다. 
다음 지도에 보니 저기가 곰배령이라고 표시된다. 
사실이야 어떠하든, 
나는 지금 곰배령에서 야생화에 취해있다. 

두 시간 남짓, 
설렁설렁 오른 길에서 참 아름다운 꽃들을 보았다. 
"천상의 화원"이라는 표현은 화사한 꽃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금방 싫증이 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곰배령 야생화 군락지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좀 더 수수하고 자연스런 느낌이 슬며시 묻어나는 표현이 필요하다. 

내려오는 길에, 
오르면서 보지 못했던 개울의 작은 폭포를 보았다. 
몸이 개운치 않아 식은 땀을 흘리며 오르던 길이라 보지 못한 것 같다. 


열 시에 오르기 시작해서 두 시 조금 넘어서 내려왔다. 
서울에서 달려온 시간과 돌아갈 시간을 계산하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오는 길에 방동약수에 들렀다. 
갑지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약수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잠이 들었다. 
주변의 소리를 모두 들으면서
나는 잠이 들어 있다. 

이십여분을 잔 후에 약수터로 올라갔다. 
피로가 밀려와 카메라를 잊고 올라온 터라 이전에 찍어 둔 약수터 사진을 대신 올린다. 

어떤 사람들은 쇠냄새 난다고 약수를 싫어하는데
나는 약수물이 좋다. 
먹고나면 편안한 속의 느낌이 좋다. 

가는 곳마다 약수를 마셔보면 
점점 묽어져가고 있다. 
예전의 그 톡 쏘는 맛이 점점 흐릿해 지고 있다. 
방동약수는 아직은 그 쏘는 맛이 살아있어서 좋다. 

저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약수터에 뿌리를 깊이 박고 버티고 서 있는 저 나무는
수액이 온통 약수로 채워져 있을까 궁금하다. 

약수 한 모금 마시고 작은 병에 가득 받아들고 내려온다. 

[방동 약수터]

내려오는 길에 잠을 확 깨워주는 장면을 만난다. 
친구와 나는 한참을 웃었다. 
친구는 사진 제목을 잘 붙여야 한다고 하는데, 
딱히 좋은 제목이 안떠오른다. 

제목은 나중에 붙이고 일단 감상하시라고 올려본다. 

[우스운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두 마리 개]

나란히 목을 빼고는 더위 속에 잠들어 있는 두 개(?)
저 모습은 오늘만이 아니라 늘 있는 모습인 듯 하다. 
앞으로 이 사진을 보는 많은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해 줄 두 개(?)에 고마움을 표한다.

비올 확률 90%.
하지만, 지금까지 하늘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약수터에서 내려오는데 갑지가 비가 쏟아진다. 
역시 비올 확률 90%.

돌아오는 길에 방동막국수 집에서 어정쩡한 저녁을 챙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막국수를 좋아하는 나는 이 길을 지날 때 마다 들른다. 


막국수에 감자전 한 접시, 수육 한 접시.
두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나의 세트메뉴이다.


이집에서는 
무엇이든 입에들어가면
살살 녹는다.

배가 고프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 바로 그 맛이다.

일곱 시 넘어서 서울에 도착한다.
친구는 집으로,
나는 사우나로...
 
가고오는 길에 졸리는 나를 대신해 운전해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곰배령 산행길 기록을 마친다. 



[마흔살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