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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었지

화천 산소길-평화의댐-양구 박수근미술관

여름 길목에 들어선 토요일,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솟는다. 
사우나 들어선 듯 후끈후끈한 열기.

강원도 화천 산소길을 찾아 나선다. 
도심 공기에 지친 우리는,
산소(O2)가 필요했나보다.... 

[하루 일정 전체를 보여주는 콜라주]


1. 화천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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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잠실에서 모여서 함께 출발하기로 한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오는 까닭에 어떤 동료는 북쪽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어떤 이는 동쪽에서 오기도 해야 한다.
토요일이라 아침 8시를 넘기면 경춘고속도로가 막히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길을 걸어야 하는 부담에 막히게 되면 하루가 피곤해진다.

우리는 다시 화천 버스터미날 앞에서 만나기로 한다.
희숙대리는 혼자 버스타고 가고,
나, 지원, 수미, 진아, 영주 대리는 내 차로,
민수, 성국, 영목대리, 그리고 영목 대리네 내무부 장관께서는 민수대리 차로,
충헌팀장은 대성리 워크샵 장소에서 출발하여 홀로, 
그렇게 서로 다른 길로 화천에 도착하기로 한다. 

우리 팀은 아침 7시 10분에 회사 앞에서 출발한다. 
처음에는 포천을 거쳐 와수리 쪽으로 올라 간 다음, 화천으로 내려오려고 계획한다.

내부순환도로에서 이야기 하느라 일동쪽으로 빠지 못하고 그대로 구리 쪽으로 나간다.  
그 상태에서 경춘고속도로를 피하여 경춘 국도를 타고 달린다.
빨리 가기 보다는 옛길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경춘국도로 들어선다.
잠시 달리다 시계를 보니 8시 30분, 
휴게소를 찾으며 달리다가,
만남 휴게소로 들어간다. 

[만남 휴게소]
간식거리와 함께 잠시 쉰다. 
영주대리는 이런 디카(ㅠㅠ)를 처음 만져 본다면 나의 카메라에 호기심 발동한다.
네 명이서 포즈를 취하고 휴게소 인증샷 날린다.
 
찍은 사진 확인하다가 지원대리의 얼굴크기가 뒷쪽 사람의 두 배임을 확인한다. 
지원대리는 원근법의 원리를 설명하며 억울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어쨋든 두 배라고 주장하는 4인과 원근법을 설명하는 1인... 

[원근법이 주제가 되었던 간식시간]


다시 출발하여 강촌을 지나 달리다가, 403번 국도로 들어선다.
의암댐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시원한 강이 넓게 펼쳐진다.
이어 70번, 5번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정말 괜찮은 드라이브 코스다. 
조수석에 앉은 수미대리는 멋진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한다. 

자전거 타기 좋은 길이다보니 간간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지나간다. 

70번 도로가 끝나는 부근에서 홀로 자전거 타고 사람을 지나친다.
갑자기 수미, 진아대리 감탄사 연발한다.
나도 운전하다 말고 힐끗 뒤돌아본다.
이미 지나쳐서 잘 안보인다.

왜들 난리일까...

이어지는 감탄사 속에 내 귀에 들리는 한 단어

"말 - 근 - 육"

[다음 지도 인용]


2. 산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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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길 100리라고 여기저기 쓰여져 있다.
처음부터 주눅이 든다. 
붕어섬 입구,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에 차를 세우고 상황판단에 들어간다. 

강을 따라 난 도로는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다.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진다. 
자전거 타기는 뒤로 밀린다. 

자전거 빌려주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미륵바위로 가서 주차하고, 폰툰다리를 건너서,
....   

자세히 일러주신다. 

미륵바위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흠, 늘 그렇듯이 인증샷으로부터 모든 일을 시작한다.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희숙과 수미 대리,
중재를 위해 상황 파악 중인 진아대리,
구경하는 충헌수석, 지원대리, 

어느 자리든 흔들림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포즈를 잡고 기다리는 나머지 사람들....  

[화천 산소길 인증샷] 

폰툰다리로 가는 길은 팍팍한 공구리 길, ㅠㅠ

바람도 없다,
나무도 없다. 

공구리 지열이 종아리를 타고 오르고,
어느새 스멀스멀, 땀이 마중 나간다. 
 
폰툰다리를 건너 물위로 난 길을 걷는다.
(이름이 맘에 안든다, 좋은 이름이 필요할 듯...)

[폰툰다리]
물은 생각보다 깨끗하지 않다.
흐름이 적어서 인지,
물비린내가 많다. 
강이 주는 상쾌함도 없다,
 
눅눅한 느낌이 나의 기분을 짓밟고 선다.  

[물위 길 시작하는 곳에서 수미대리의 더블 V]

십여분 후에 길은 산으로 이어졌다. 
그늘진 숲길이라 후덥지근함은 덜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답하다.
바람이 없어서 일까. 

[물위 길에서 겁에 질린 모습으로 물 깊이를 가늠하는 수미대리]

숲속길은 자연을 살려두려 애쓴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민수대리가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길위로 드리워진 나무에 머리를 부딪힌다.
부딪히는 소리만 놓고 보면 피가 흐를 것만 같다.
다행히 별 상처는 아니다.  

이 숲속 길을 지나려면,  
몇 차례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자연도 좋지만,
길을 걷는 사람의 안전을 조금만 더 생각해 주면 좋겠다.  

[숲속길에서 본 꽃]

앞 서서 가던 사람들에게 소란이 벌어졌다. 
가보니 작은 뱀 한 마리가 길 옆 기슭으로 기어가고 있다.

독사다! 

이 독사는 독성이 조금 덜한 독사로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부독사"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서너차례 잡았던 기억이 있는 뱀, 
학용품을 사는데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뱀이다.
 
나무가지로 이러저리 뱀을 뒤집어서 크기를 가늠해 보다가,
윗쪽에서 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한다. 
아, 개구리를 쫓아 가고 있었구나.  

쫒고 쫒기는 숨막히는 자연의 드라마는, 
"진행 중"으로 남겨두고,
길을 재촉한다. 

숲길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숲길 끝에는,
공구리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기를 확확 내뿜으면서.

여기가 산소길 끝입니다.
그냥 분위기로 보면 그렇다. 

우린 아직도 산소가 많이 필요한데... ㅠㅠ

숲속 길로 다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 아줌마를 만난다. 
"떡 하나 먹으면 안 잡아 먹지... " 

철원에서 오신 아주머니들, 
너무나 재미있는 표현으로 찹쌀떡을 건내신다. 

출출하던 차에 맛있게 먹는다. 
참 맛있다.  (감사합니다. ^^)
 
다시 물위 길로 들어선다. 
바람이 살랑인다. 
시원한 느낌이 살아 오른다. 
나무 그늘이 없어,
따가운 햇볕이 온몸을 찌른다.  

폰툰다리를 건너와서 건너편 물길을 다시 본다. 
처음에 느끼지 못했던 것이 있다. 
걸어보고 느낀 것이다.  

[마흔살 엔지니어, 옆에 리어카만 있으면...]

그 느낌은,
산과 물이 만나는 지점을,
인공 구조물이 날카롭게 자르고 지나가는 어색함이다. 
산자락과 어우러지게 물위 길을 놓을 수는 없었을까.
 
물위 길이 힘들었던 이유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길이 스스로의 존재를 주장하는 어색한 설계보다는,
산자락에 살짝살짝 묻어가는 방식으로 설계할 수는 없었을까?
산과 물이 서로를 보듬어 주는 모양으로 길을 낼 수는 없었을까?

[산과 물을 자르는 물위 길]

점심으로 근처에서 막국수를 먹는다.
춘천막국수 맛에 익숙해서일까.
배가 고팠음에도 평양막국수를 먹고 난 표정들이 영 시원치 않다.
저녁으로 진짜 유명한 덕곡리 막국수를 먹자는 약속을 하고는 밖으로 나온다.

오후에는 자전거를 빌려 나머지 길을 더 둘러볼까하고 물어보니,
다들 반기지 않는다. 

산소 결핍 산소길을 보충할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하다. 

양구 넘어가면서 평화의 댐을 보고, 
양구 가서는 박수근 미술관으로 가자. 


3. 평화의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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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은 내가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곳이다.
화천에서 양구방향으로 가다가,
평화의 댐 가는 길로 들어선다. 

오른쪽으로 시원한 폭포가 보인다. 
급히 차를 세우고, 
모두들 폭포가 보이는 쪽으로 몰려 들었다. 

폭포를 바라보며 사는 저 동네 사람들은 좋겠다.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나는 폭포보다 폭포와 어깨를 맞대고, 
쭉 뻗어가는 저 산등성이들이 더 보기 좋다. 

[폭포를 마주하고 있는 마을]

해산터널로 오르는 길 왼쪽으로 펼쳐진, 
우렁우렁한 산들, 
여기가 바로 그 강원도라고 외치는 듯 하다. 

[여기야 강원도야! 알겠니]
 
이곳 지형은 익숙하다.
하지만, 내가 익숙한 그 길은 DMZ 쪽으로 가는 길이어서 갈 수가 없다.

[평화의 댐 설명, 듣는 사람 단 두 명, ㅠㅠ]

간단하게 평화의 댐을 안내했다.
비목 공원도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듯 하다.

한참을 이야기하는데, 
누군가 비목이 뭐냐고 물었다.
유명한 가곡이라고 대답했다. 
누가 부른 노래냐고 물었다.

순간 답답증이 나서 그만 
"공일오비(015B)"라고 대답했다. ㅠㅠ 

아래 링크 참조해주세요... ㅠㅠ
(http://peacejeju.com.ne.kr/musicbox/bimok-violin.htm

전쟁의 아픔은,
이렇게 망각이라는 축복으로 잊혀져 간다. 
기억을 되세기면 아픔만 커지기 때문일거다. 

그래,  되세김은 과거 세대의 몫이고 
새로운 준비는 미래 세대의 몫이니까.

새로운 세대는 되세김질 멈추어야 한다. 
과거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걸어두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에너지를 미래로 집중할 수 있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비목공원]

내려갈 때는 위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갈 때는 왼쪽으로 난 작은 차도로 걷는다. 
올라 가는 길에 비목 노랫말을 새긴 하트 모양의 돌이 보인다. 

가사를 보니 아까 비목을 모른다고 한 동료들을 위해, 
한 곡조 뽑아볼까 하는 충동이 생긴다.
참아야지,
우리 모두의 편안한 여정을 위해서...

혼자 앞서 걸으며, 
나즈막히 불러본다. 

"초연이 쓸고 간 ~~" 

[비목 노랫말을 새긴 돌]

임남댐(금강산댐)에서 물을 가두어서 댐 윗쪽의 강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강바닥을 찍지 못해 예전의 사진목록에서 가져왔다.) 

[예전에 찍어 두었던 평화의 댐 사진]

높이를 보여주는 숫자가 쓰여진 평화의 댐 모습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은 (가슴 답답한) 평화의 댐]

댐 안쪽에는 전에 왔을 때 보지 못했던 물문화관이 버티고 서 있다.
물의 중요성을 다양한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전시실의 주요 시나리오는 이러하다.
좀 혼란스럽다.  

  - 물은 중요하다. (인체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중도 예로 듦, ㅠㅠ)
  - 물이 부족하다. 우리나라도 곧 물 부족국가가 된다. 
  - 하지만, 물은 위험하다.
  - 북의 임남댐이 무너지면, 서울이 위험하다(ㅠㅠ)
  - 우리의 평화의 댐이 이런 위험을 지켜 줄꺼다. 걱정마시라. 
  - [한 쪽 모퉁이 명당자리 기념촬영자리에] 물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명품보"를 건설해야 한다...(헉) 

영상실에서는 구경오신 어르신들께서 평화의 댐의 중요성에 대한 영상물을 보고 계셨다.
임남댐이 무너지면 그 하류에 있는 서울을 포함한 도시들이 위험하다는 영상이었다.
이십 몇년전 뉴스에서 많이 보던 그런 시나리오와 비슷했다.  

물이 쓰나미처럼 서울을 덮치는 영상에서,
어르신들은 안타까운 탄식을,
평화의 댐이 정의의 사도처럼 그 물을 막아서 도시를 안전하게 지키는 영상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ㅠㅠ   

그 당시 무슨 대학교 토목과 교수라는 사람이 나와서,
서울의 어디까지 잠긴다면서 그림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덧붙여서, 한강수계를 범람시킨 후, 
한강 이북의 우리 국군을 고립시키려한다는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감독 맘대로 만들어가는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 때의 공포가 컸던 까닭에, 
그 때 상황과 느낌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때 그 교수님은 지금 뭘 하실까...."  

임남댐의 위협에 대한 대응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최선이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문화관, 사진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댐 아래 쪽에 있던 모양과 같은 종이 위쪽에도 하나 새로 생겼다.
평화를 상징하는 평화의 종이라고 한다. 
잠시 왁자지껄 하더니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데에엥~~~~

북의 위협이 항상 존재하는,
현재의 불안한 평화를 넘어,
남과 북이 하나되어,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평화의 댐을 뒤로하고,
뜨거운 도로의 열기 속으로 들어간다.   

[평화의 댐 상류쪽에 있는 종]

댐을 떠난 지 10여분,
오천터널을 만난다.
 
터널 바로 지나서 차를 세운다.
예전의 그 서늘한 바람이,
아직도 터널에서 휘몰아 나온다. 

[오천터널, 예전사진]


소대장으로 처음 근무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누군가 소리라도 지르면 금방이라도 무너질듯, 
벽체가 여기저기 허무너진 채로, 
세월의 피로에 지친 듯 위태위태하게 서 있다.
(아래 사진은 3년전의 사진으로 벽체가 제법 멀쩡하다)

조심조심 건물로 들어간다.
지원대리가 건빵봉지와 맛스타 캔을 발견한다. 
그 순간부터 차에 다시 오를 때까지, 
우리의 이야기 소재는 단연 맛스타였다. 

다음에 다시 올 때 그 때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주기를 바래본다. 


[예전 사진폴더에서 가져온 2RG 내부반]



4. 박수근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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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 박수근 미술관의 위상은 양구를 들어서는 순간 바로 알 수 있다. 
박수근 미술관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곳곳에 놓여 있다. 
양구에서 박수근 미술관 찾기는 식은 죽 먹기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모두 "박수근로"이다. 

미술관은 박수근 화백의 생가터에 
이웃과 벗하며 다정하게 서 있었다.
 
돌담이 있으되, 
길을 막는 담이 아니다. 
부지런한 안내자처럼, 
그렇게 휘휘 돌아,
안으로 우리를 이끌고,
안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돌아드는 돌담길에서,  
오랜 벗을 방문하는 둣이 설렌다. 


[멋진 돌담길을 걸어오는 희숙, 수미, 지원, 진아, 영주 대리]
 
벗과 손을 잡고 거닐어도, 
주인이 뭐라고 하지 않을, 
그런 편안함이 느껴지는 앞마당이다. 

그래, 
이곳은 누가 걸어도 최고의 연인이 된다. 

[영목대리 부부]

오랫만에 만나는 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감동이었다.
거칠고 투박한 질감이지만,
신기하리만치 따스한 느낌으로,  
가난한 사람의 삶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림을 보는 내내, 
어린 시절 나의 어머니,
내가 살던 시골 동네와 탄광촌 동네가 떠올랐다. 

기억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그림이 되어, 
내 앞에서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 
 
희숙대리도 감동이 큰 듯, 
조용조용 느릿느릿,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희숙대리에게는, 
여기가 산소길일게다.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


몸상태가 좋지 않아 힘들어 하던 영목대리, 
박수근 화백의 동상 옆에서 영주 대리의 평범한 자세를 나무라며,
이런 곳에서 이런 분과 함께 하는 자세와 방법을 알려 준다. 
(타이밍을 놓쳐서 느긋하게 화백께 기대어 있는 자세를 찍지못함, 다시 가자고 할 수도 없고, ㅠㅠ) 

[처음으로 활짝 웃는 영목대리]

전시실 안에서 화백의 묘소로 이르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묘소로 가는 길에서 내려다 본 미술관은 아늑한 느낌이다. 
미술관을 지나 흘러가는 물길을 막거나 돌리지 않고, 
그냥 물이 흘러가도록 가운데 길을 내 주었다. 

작은 다리 위로는 빨래터가 있고, 
다리를 건너면 화백의 동상이 있다. 

[묘소로 가는 길에서 본 미술관, 저기 멀리 빨간색은 무조건 지원대리.]

산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잠시 걸으면, 
전망대가 나오고, 
전망대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박수근 화백과 김복순 여사를 함께 모셔둔 묘소를 만난다. 

볕이 따뜻하게 드는, 
조그만 산 자락에, 
세기의 로맨스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두 영혼이 잠들어 계신다. 

전시실에서 읽었던 
화백의 청혼편지가 떠올랐다. 

[박수근 화백의 묘소]

묘소로 올라가는 길에 성국대리가 서서, 
이곳이 산소길(박수근 화백의 산소로 가는 길)이라고, 
우기고 있다... (ㅋㅋ)

이전 산소길이 맘에 안 들었나 보다. 

그래, 성국대리에겐 여기가 진정한 산소길이다.

[산소길을 발견한 성국대리]

산소길(??)을 내려오는 세 사람, 
뭔가 신나는 일이 있었는지, 
연신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산소길에서 신체를 단련하고, 
평화의 댐에서 현실을 깨닫고, 
미술관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은다음, 

이제 남은 것은 주린 배를 위로하는 일.... 


5. 추곡 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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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 춘천으로 가는 46번 국도를 따라 내려온다. 
예전의 구불구불 길이,
곧은 직선 도로로 바뀌어 있다. 

가끔은 예전 길과, 
왼쪽으로 펼쳐지는 절경을 보려고, 
그 구불길로 들어섰다가는, 
다시 고속화 도로로 올라가곤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런 주행 덕분에 
영목대리가 멀미를 심하게 했다는... ㅠㅠ 영목대리 미안해....) 

추곡약수터 표지판을 보고는 예전 도로로 들어선다. 
차는 아래쪽 주차장에 두고 걸어간다. 

[추곡약수터 가는 길, 예전 사진]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물통 여러 개를 두고 진을 치고 물을 담고 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위쪽에도 약수 나오는 곳이 있는데, 
대신 쏘는 맛이 덜하다고 한다. 

위쪽으로 갔더니,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은 같은데, 
이 분은 줄서는 사람들에게 한 바가지씩 퍼주시며 자신의 통에도 물을 담는다. 

약수물은 많이 묽어져 있다. 
요즘은 어느 약수터나 그렇다. 

[추곡약수터, 예전 사진]

난 그래도 그 물이 좋은데, 
다들 별로 인듯,
작은 병 하나도 채 못 마시고, 
식당을 찾아 내려온다. 

약수산채비빔밥을 달라 했더니, 
오늘 다 팔아서 반찬이 없다 하신다. 

유일한 메뉴, 닭도리탕, 
메뉴판 옆에 "하림닭"이라고 쓰여있다. 

토종닭, 닭도리탕, 하림닭,... 

잠시 혼란이 있은 후, 우리는, 
식당 옆 산기슭에서 모이를 찾아 분주히 돌아다니는,
하얀 닭을 보았다.

그럼 저 닭은 뭐지???

어쨋든 엄청나게 큰 양은 냄비에, 
열명이 충분히 먹고 남을 닭도리탕이 나온다. 

[엄청난 크기의 양은 냄비, 비밀대화하는 두 분은 사생활보호 모드로]

하림이든 토종이든, 
지금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진실이다. 

6.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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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시도한 길걷기는,
초반 산소결핍으로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화의 댐과 박수근 미술관은 산소를 가득가득 채워주었다. 

애자일 스타일의 일정에 약간의 위험이 있었지만, 
협의하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결국 모두가 만족하는 길걷기로 막을 내렸다.
(나만의 생각인가??? 그렇다면, ㅠㅠ)

워크샵으로 피곤한 가운데 참여해 준 충헌 수석, 
축구공이 없어 힘들어 한 영목대리와 영목대리네 내무부장관님,
홀로 버스타고 북으로 북으로, 잠결에 화천에 도착한 희숙대리,
출근한 지 얼마되지 않음에도 거리없이 함께 해 준  영주대리,
일정과 참여자들을 계속 체크하느라 분주했던 수미대리, 
멋진 SM5를 끌고 와서 고속주행의 진수를 보여 준 민수대리, 
"말근육"의 중요성을 알려준 진아대리, 
양구에서 새로운 산소길을 발견한 성국대리, 
그리고, 뱀술 생각에 살려보낸 독사를 그리워하던 지원대리, 

여러분 들과 함께 해서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다음 길걷기를 기약하며~~

[사진은 송태국, 이충헌, 염성국, 최영목, 네 명의 공동작품입니다.]

[마흔살 엔지니어]